[데스크 칼럼] 참혹한 탈원전 수렁

입력 2022-03-03 17:00   수정 2022-03-04 00:14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공급망 현안점검회의’에서 “향후 60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지난 5년 내내 탈(脫)원전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꼼짝달싹 못 한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반된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궁지에 몰린 정부가 갑자기 말 바꾸기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청와대는 애초부터 급격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반박을 내놨다. 기존 입장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일부 언론과 야당이 의도적으로 왜곡된 주장을 편다는 것이다.
켜켜이 쌓이는 탈원전 부작용
그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추진된 탈원전 정책은 단계적이지도 그렇다고 점진적이지도 않았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 이후 40여 년간 대표 국가 에너지원 역할을 해 온 원전에 과학적 근거도 없이 덜컥 ‘무섭고 위험한 발전원’이라는 불신의 굴레를 씌웠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작업에 제대로 된 공론화 절차는 생략됐다. 이 과정에서 원전 전문가와 업계의 절규 섞인 호소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환경론자들이 주축이 돼 설계한 반(反)원전 정책은 탈핵→탈원전→에너지전환으로 명칭을 바꿔가며 이미지 세탁을 했다. 급기야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을 가로막기 위해 중앙부처가 동원돼 자료를 조작·폐기하는 조직적 범죄까지 저질렀다.

현 정부가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는 건설이 취소됐다. 고리 2호기 등 기존 원전 11기의 수명 연장도 금지됐다. 세계 최고 기술력과 경제성을 인정받는 한국의 원전 운영 로드맵이 이렇게 백지화 수순을 밟은 것이다. 값싼 원전을 놔두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돌린 한국전력은 발전비용 증가로 지난해 역대 최대인 5조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올해 한전의 적자 규모가 20조원에 달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이 손실액 모두 이자까지 더해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념보다 현실 우선한 정책 내야
더 심각한 폐해는 국내 원전산업의 붕괴다. 현 정부가 2017년 6월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국내 원전 생태계는 밑바닥부터 균열이 시작됐다. 수주 절벽에 맞닥뜨린 중소협력업체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었고, 관련 기술인력은 현장을 떠났다.

탈원전 정책의 뿌리는 문 대통령이 2012년 18대 대선 때 제시한 ‘2060년 탈핵’ 공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전 밀집 지역인 경남을 지지 기반으로 둔 문 대통령에게 탈원전은 정치적 신념에 가깝다는 평가다. 현 정부의 임기가 두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탈원전 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탈원전 정책의 궤도 수정 자체가 현 정권의 산업·에너지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20대 대선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판은 여야를 막론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들로 가득하다. 증세 없는 복지, 전 국민 기본소득 등 나랏돈을 화수분처럼 쓰겠다는 후보들의 구상은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선동형 정치 구호에 다름없다. 이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순간 탈원전 정책과 같은 비극의 막은 다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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